투자정보마당
걸어서 가치투자 속으로 —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마하까지의 일주일
4월 말, 신영자산운용 및 신영증권 대표단과 함께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번 출장의 여정은 샌프란시스코의 Dodge & Cox 미팅을 시작으로, 오마하에서 열린 Gabelli 인베스터 컨퍼런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그리고 Markel Group 미팅까지 이어졌다. 이 일주일은 세계 주요 가치투자 기관들이 어떤 철학과 시스템으로 장기성과를 만들어내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1. 샌프란시스코
Dodge & Cox – ‘가격의 규율’을 기반으로 한 정통 가치투자
샌프란시스코 본사에서 진행된 Dodge & Cox 미팅은 그들의 운용 철학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1930년대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9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시장 트렌드에 이끌려 철학을 바꾼 적이 없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회의실 벽면의 짧고 간결한 문구였다. 짧지만 강력한 이 문장은 Dodge & Cox의 운용 방식 전체를 설명한다.
“Price discipline. (가격의 규율.)”
그들은 주가가 기업의 장기 가치를 과도하게 반영하거나 반대로 저평가될 때를 면밀히 관찰하며, 가격의 왜곡을 이용해 장기적 성과를 창출하는 데 집중한다. 그들의 운용 철학은 단순했다. 시장의 단기적 변동보다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가격보다 가치를 본다. 포트폴리오 회전율은 연 10~20% 수준으로 낮고, 투자 기간은 3~5년에 달한다. 이는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펀더멘털을 평가하는 전략이다.
Dodge & Cox의 포트폴리오는 최근 IT 비중을 줄이고 금융·산업재·헬스케어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방어적 판단이 아니라, 내재가치 대비 주가가 과도하게 상승한 산업을 배제하고 실물경제 기반의 저평가된 섹터에 집중하는 전략적 조정이다.
Dodge & Cox의 투자 방식은 ‘예측’보다 ‘분석’, ‘속도’보다 ‘규율’을 우선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포트폴리오 내 비중이 높은 종목이 반드시 ‘확신이 큰 종목’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중은 철저한 분석에 의한 ‘기업의 본질가치와의 차이’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Dodge & Cox의 철학은 시장이 아닌 가치에 충실한, 냉철한 규율의 투자였다.
2. 오마하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마하로 향하는 비행기 안은 정장을 입은 젊은 펀드매니저부터 버핏의 책을 손에 든 백발의 부부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항에는 ‘Welcome to the Berkshire Meeting’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오마하는 그 주만 되면 하나의 거대한 가치투자 축제가 된다.
이번 여정의 후반부는 모두 이곳 오마하에서 진행됐다.
Gabelli Investors — 능동적인 가치투자자
오마하 도심 한복판의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Gabelli 컨퍼런스에는 ‘가치투자의 행동주의자’로 불리는 마리오 가벨리(Mario Gabelli) 가 직접 무대에 섰다. 그는 1942년생으로 버핏과 같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제자다.
가벨리의 메시지는 단호하고 명확했다.
“시장은 늘 과소평가된 기업을 만들어내죠. 하지만 진짜 기회는, 숫자 뒤의 인간을 읽을 때 생깁니다.”
가벨리의 핵심은 PMV(Private Market Value) 개념이다. 기업의 내재가치를 회계 숫자가 아닌 “실제 인수자가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느냐”로 평가한다. 또한 그는 단순히 저평가 종목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치를 시장이 인식하게 만들 촉매(Catalyst) — 구조조정, 자산 매각, 산업 내 지각변동 — 를 찾아낸다.
이 접근법은 가치투자에 ‘행동’의 개념을 더한 것이다. 즉, ‘기다리는 투자’에서 ‘움직이는 가치투자’로의 확장. 그의 철학은 단순히 보수적인 가치투자가 아니라, 변화의 본질을 읽는 가치투자였다.

Markel Group — 버크셔의 조용한 후계자
다음 일정은 Markel Group 미팅이었다. 이 회사는 흔히 ‘Mini-Berkshire’로 불린다. 보험사업에서 창출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장기투자를 이어가는 구조, 그리고 투자원칙을 버리지 않는 운용철학까지 버크셔와 닮았다.
Markel의 포트폴리오는 버크셔, 구글, 브룩필드, 아마존, 홈디포, 비자 등 장기 성장성과 현금창출력을 겸비한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버크셔와 달리 ‘조용한 성장’을 택한다. 자산 배분의 성과보다는, 회사의 문화와 시스템을 ‘가치투자에 적합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3.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다음날, 마침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가 열렸다. 오마하의 인구는 40만 명이지만, 이 주말에만 전 세계에서 모인 4만 명이 넘는 투자자들로 붐볐다. 오마하라는 조용한 도시가 단 이틀간 전 세계 가치투자자들의 성지로 변해 있었다.
Day 1 — 바자회
행사의 첫날에는 버크셔 자회사들이 참여하는 바자회가 열렸다. 코카콜라, 시즈캔디, GEICO, BNSF, Fruit of the Loom 등 각 계열사들이 자사의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소개했다. 워런 버핏 기념품을 파는 부스도 일부 있었다.
이 바자회는 버크셔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어떻게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사업이 소비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가치투자는 숫자가 아니라 사업의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버핏의 말을 느껴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Day 2 — Q&A 세션
이튿날 오전, 대규모 Q&A 세션이 열렸다. Omaha CHI Health Center안은 수만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워런 버핏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로 맞아주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던 바로 그 현장에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렜다. 버핏은 무려 4시간 동안 사전 질문과 현장 질문을 소화했다.
트럼프 관세 전쟁에 대한 우려가 많았던 터라 관련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나라별로 잘하는 것을 생산해 무역을 하는 게 좋습니다. 무역을 무기로 삼으면 모두가 손해를 보죠. 다른 나라가 번영한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 보는 건 아닙니다.”
그는 보호무역보다 균형 잡힌 세계무역의 장기적 이익을 강조했다. 단기적 정치 이슈보다 시스템의 건강성을 보는 그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보유 현금 관련 질문에서는 투자자의 태도에 대한 본질적 조언이 나왔다.
“우리는 현재 3,40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매력적인 기회는 가끔씩만 옵니다. 그때까지는 인내해야 하지만, 기회가 오면 즉시 행동해야 합니다.”
단기 매매가 아닌, 기회를 기다릴 준비된 인내가 그의 투자법의 핵심이었다.
은퇴 관련 발언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Q&A 마지막 5분, 그는 준비된 듯 조용히 말했다.
“올해 연말, 버크셔는 Greg Abel이 이끌게 됩니다.”
장내는 잠시 탄식과 혼란스러움이 담긴 소리로 가득했지만, 곧 수만 명이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버핏은 “버크셔에는 문화를 이해한 유능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버크셔의 정신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퇴장은 단순한 인사교체가 아니라, 가치투자의 시대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주주총회 후 이어진 NFM 피크닉에서는 투자자와 가족들이 편안하게 어우러졌다. 가치투자가 단순한 운용 철학을 넘어, 이곳에서는 하나의 삶의 태도로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Brooks 5K Marathon — “Invest in Yourself”
다음날 아침에는 버크셔 주주총회 공식 프로그램 중 하나인 Brooks 5K Marathon이 열렸다. 모토는 “Invest in Yourself.” 즉, 건강한 신체와 자기 관리가 최고의 투자라는 메시지였다.
생각보다 많은 주주들이 운동복을 입고 나타났다. 나이 지긋한 주주부터 젊은 직장인, 가족 단위 참가자까지 다양했다. 그들의 표정에서 느껴진 건 ‘부자들의 달리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투자”였다.
마라톤 코스를 따라 오마하 도심을 걸으며,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어떤 삶과 행동 패턴을 가져왔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단순히 주식시장에서의 성과가 아니라, 자신을 관리하고, 절제하며, 꾸준히 배우는 삶의 방식 — 그것이 버크셔의 철학이자, 가치투자의 진짜 근원이었다.

5.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Joslyn Art Museum을 방문했다.
이곳은 한때 버크셔 주총회가 열리던 역사적인 장소로, 갤러리에는 원주민의 전통을 존중하는 조각과 풍경화, 그리고 오마하 출신 현대미술가 Ed Ruscha의 작품까지 갖추어 조용한 음악 속에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기에 완벽했다.

이번 출장의 여정은 가치투자의 철학이 살아 숨 쉬는 현장 탐방이었다.
Dodge & Cox의 원칙을 지키는 투자, Gabelli의 투자에 대한 열정과 많은 투자 아이디어, Markel의 가치투자 계승, 버크셔의 축제 같은 주주총회 —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졌다.
버핏의 부의 96%가 60세 이후 만들어졌듯, 좋은 투자란 인내와 자기 관리, 그리고 철학의 지속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신영자산운용 역시 같은 철학을 지향해 왔다. 단기 성과나 시장의 소음에 흔들리는 대신, 철저한 인하우스 리서치와 기업의 장기 경쟁력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시간이 가치의 진실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운용 원칙을 지켜왔다. 우리는 시장의 변동성보다 기업의 본질적 변화에 주목하며, 가격이 아닌 가치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추구한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오래 보유하는 투자’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 과정과 시장의 재평가가 자연스러운 속도로 진행될 시간을 존중하는 장기·가치투자의 핵심 정신이다. 버핏이 말한 ‘시간이 만들어주는 복리의 힘’을 신영의 방식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 — 그것이 우리의 철학이며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어갈 신영자산운용의 방향성이다.
신영자산운용 준법감시인 심사필 25-다-773